제      목 국가지정문화재-사적-수로왕릉
사적번호 사적 제73호
위     치 김해시 가락로 93번길 26
사     진  
상세내용 김해의 상징적 문화유적으로서 가락국의 시조대왕인 수로왕의 무덤으로 납릉 이라고도 합니다. 수로왕은 서기 42년 음력 3월 3일 구지봉에 탄강하여 3월 15일에 즉위함으로써 가락국을 건국하였고 서기 199년 3월 20일에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습니다. 왕릉은 선조 13년(1580년)에 영남관찰사 허엽이 능을 수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인조 25년(1647년) 능비를 세우고 고종 15년(1878년)에는 숭선전이란 호를 내리고 침묘를 개축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수로왕의 신위를 모신 숭선전에서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있는데 숭선전 제례는 지방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      목 국가지정문화재-사적-수로왕비릉
사적번호 사적 제74호
연     대 가야
위     치 김해시 가락로 190번길 1
상세내용 수로왕비는 원래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이름은 허황옥입니다. 수로왕 7년인 서기 48년에 16세의 나이로 배를 타고 가락국에 도착하여 왕비가 되었고 서기 189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규모는 길이 18m 폭 6m 높이 약 5m로 현재의 능은 조선 인조 25년(1641년)에 수축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왕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열 아들중 두 아들을 어머니의 성인 허씨를 따르게 하여 김해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      목 국가지정문화재-사적-구산동 고분군
사적번호 사적 제75호
위     치 김해시 구산동 64번지
사     진  
상세내용 분성산의 서남쪽 기슭에 위치하는 고분으로 현재 2기가 남아있습니다. 이중에서 1919년 조사된 삼산리 1호분은 원형봉토를 가진 석실분으로 동서 2.4m 남북 3m의 장방형이며 연도는 남벽의 서쪽에 달려있는 것으로 밝혀졌 있습니다. 금관가야 멸망후인 서기 6세기 후반경의 무덤으로 당시 김해지역을 다스리던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제      목 국가지정문화재-사적-예안리고분군
사적번호 사적 제261호
위     치 대동면 예안리 369-6
사     진  
상세내용 1976년부터 1980년에 걸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됨으로써 무덤의 성격이 일부 밝혀지게 된 가야시대 서민계층의 집단 묘역입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해 밝혀진 무덤의 형태는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석실묘 등 매우 다양하며 이런 형태들의 무덤이 모두 300여기나 확인 되었습니다.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다양하고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100여구의 인골이 발견 되기도 하였습니다. 발굴된 수많은 인골은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형질학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편두의 풍습이 남아 있는 인골도 출토되었습니다.

 

제      목 국가지정문화재-사적-대성동고분군
사적번호 사적 제341호
연     대 금관가야
위     치 김해시 가야의길 126
사     진  
상세내용 1990년에서 1991년까지 3차에 걸쳐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학술 발굴된 2~6C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집단묘역으로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 옹관묘 등 다양한 묘제의 무덤이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금관가야의 지배계층 묘로 보이는 목곽무덤에서 풍성한 철기문화와 강력한 기마군단을 가진 가야문화의 실체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 되었으며 후한대의 중국제 거울을 비롯하여 일본의 고분에서 보이는 통형동기 파형동기 등이 출토되어 한·중·일 삼국간의 문물교류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자료제공 : 김해시

포스팅날짜 : 2014. 5. 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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