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국가지정문화재-보물-선조국문교서
사적이름 보물 제951호
연     대 조선[선조]
위     치 경남 김해시 흥동 424(부산시립박물관 보관)
사     진  
상세내용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으로 임금이 피난하여 의주에 있을 적에 백성들에게 내린 한글로 쓴 교서입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왜적에 협조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선조는 일반대중이 쉽게 알 수 있는 한글로 쓴 교서를 내려 포로가 된 백성을 회유하여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조가 한양으로 다시 돌아오기 한 달 전에 내려진 것인데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장수 권탁(1544~1593)은 이 문서를 가지고 적진에 몰래 들어가 적 수십 명을 죽이고 우리 백성 100여 명을 구해 나왔습니다. 그 후 이 교서는 권탁의 후손 집에서 보관하다가 도둑을 맞고 다시 찾은 것입니다.
어쩔수 없이 왜인에게 붙들려 간 백성은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과 왜군을 잡아오거나 왜군의 정보를 알아오는 사람 또는 포로로 잡힌 우리 백성들을 많이 데리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천민 양민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내릴 것을 약속한 내용들이 실려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과 한글로 쓰여 진 점에서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제      목 국가지정문화재-보물-묘법연화경(권4~7)
사적번호 보물 제961-1호
연     대 조선시대
보관위치 김해시 대동로 529번길 83 원명사
사     진  
상세내용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입니다.

묘법연화경 중 권4에서 권7에 해당하는 이 책은 태종 5년(1405)에 성달생·성개 형제가 죽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옮겨 적은 불경을 신문(信文)이 목판에 새겨 찍어낸 것입니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4권을 하나의 책으로 엮었으며 책의 크기는 세로 26.8㎝ 가로 16㎝입니다.

2004년 10월 서울에 거주하는 이경희씨가 대동면 원명사(주지 : 박형국)에 기증하였습니다.

보물 제961호(1998.12.28)에서 경남 창원 맹인호 소장 ‘묘법연화경 권 4~7’이 보물 제961-2호로 추가지정 됨에 따라 지정번호가 변경되었습니다. 


 

제      목 국가지정문화재-사적-봉황동 유적
사적번호 사적 제2호
연     대 가야시대
위     치 봉황동 253번지 일원
사     진  
상세내용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지로서 1920년 우리나라 고고학상 최초로 발굴 조사된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구 문화재 자료 제87호)가 합쳐져 2001.2.5 사적으로 확대 지정된 유적입니다. 패총에서는 소위 김해식 토기와 각종 철기 골각기 등과 함께 중국 왕망시대(AD 9~22)의 ‘화천’이라는 동전이 출토되어 당시의 교역상황을 나타내주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불에 탄 쌀이 출토되어 쌀농사의 기원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구릉위에는 황세 장군과 여의낭자 전설에 관련된 여의각 황세바위 등이 남아있으며 가야시대 고상가옥 주거지들이 발굴되기도 하였습니다. 1999년 3월 부산대 박물관에서 회현리 패총을 재발굴하고 발굴단면은 시청 현관에 전시하였습니다.
2002~2003년 고상가옥 수혈주거 망루 목책 등을 복원 정비하였습니다.
2006. 10. 13 패총단면 전시관도 개관하였습니다.

 

제      목 국가지정문화재-사적-분산성
사적번호 사적 제66호
연     대 고려
위     치 김해시 가야로 405번안길 210-162
사     진  
상세내용 고려 우왕 3년(1377년) 박 위 부사가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한 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고종 8년(1871년) 정현석 부사가 개축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의 기초 선정방법이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테뫼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때 최초 축성연대는 가야시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곽의 길이는 총 929m 평균 폭은 약 8m입니다. 현재 남북의 2개 문지와 서편의 암문 우물지 등이 남아 있으며 97년 복원된 봉수대가 있습니다.

자료제공 : 김해시



포스팅날짜 : 2014. 5. 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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