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도지정문화재-기념물-서상동 지석묘
사적번호 도 지정기념물 제4호
위     치 김해시 가락로 108-7
사     진  
상세내용 청동기시대의 전형적인 남방식 지석묘로 무덤의 주체는 땅 속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석묘에는 돌칼 돌화살촉 무문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길이가 4.6m나 되는 큰 상석 위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충신의 한분인 송 빈 선생이 이곳에서 순절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제      목 도지정문화재-기념물-유하패총
사적번호 도 지정기념물 제45호
연     대 4~5세기
위     치 김해시 유하동 183번지 외
사     진  
상세내용 하손부락 뒷산의 동남단에 형성되어 있는 유하패총은 가야시대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생선뼈 동물뼈 등과 당시 사람들이 쓰던 각종 토기나 도기들이 그대로 묻혀 쌓여 있는 곳입니다. 정식으로 발굴조사가 되지 않아 정확한 유적의 성격은 알 수 없으나 넓은 범위에 걸쳐 있으며 지표면에 흩어져 있는 토기편들로 보아 가야시대인 4~5세기 때의 패총으로 보입니다.

 

제      목 도지정문화재-기념물-양동산성
사적번호 도 지정기념물 제91호
연     대 가야시대
위     치 주촌면 양동리 산 39-1
사     진  
상세내용 양동리와 내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331m의 산봉우리를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일부는 흙으로 쌓고 일부는 대강 다듬은 할석으로 쌓았으며 마을이름을 따라 양동산성 내삼성 이라고도 불리고 가곡산성이라고도 합니다. 가야시대에 쌓여서 계속 수리되어 사용된 듯하며 둘레 약 800m이고 성벽 높이는 2.5m에 두께 5m로 협축하였던 부분이 허물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쪽과 북쪽의 문터에는 초석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우물터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제      목 도지정문화재-기념물-내동 지석묘
사적번호 도 지정기념물 제97호
위     치 김해시 금관대로 1265번길 4-1
사     진  
상세내용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대단위 주택지로 변모한 지역인 내동에서 발견된 내동 지석묘는 ‘95년 동의대에서 발굴조사한 후 상석은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이전 되어 있습니다. 내동 지석묘는 상석과 지석 개석 및 하부 석곽을 갖춘 형식으로 내부 바닥에는 소형 널빤지 꼴의 할석을 깔아 시상대를 만들었습니다. 홍도가 1점 출토되어 매장과 관련된 의례행위가 이루어졌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제      목 도지정문화재-기념물-칠산동 고분군
사적번호 도 지정기념물 제98호
위     치 김해시 금관대로 838번길 15-28
사     진  
상세내용 칠산 남단의 해발 90m정도의 정상부 주변에 두 곳으로 나누어져 형성되어 있는데 북쪽에는 10여기의 큰 수혈식 석곽묘군이 남쪽에는 수십 기의 작은 수혈식 석곽묘와 목곽묘가 혼재하고 있음이 1987년 경성대학교 박물관의 발굴 조사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3~4세기의 목곽묘에서 4~5세기의 석곽묘로 변화하는 가야묘제 변천상을 잘 알 수 있는 유적입니다.

자료제공 : 김해시

포스팅날짜 : 2014. 4. 29. 14:07

제      목 문화유적-불상-미륵암 마애석불
사적번호 불상
연     대 미상
위     치 김해시 불암동
사     진  
상세내용 원래 불암동에 있던 것이 남해고속도로 공사시 파괴되어 현재 동상동의 불교 포교원 내에 옮겨져 있습니다. 화강암에 새긴 마애불로 안면부가 파손되어 형태는 확실치 않지만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진 모습입니다. 눈은 반개(半開)하고 짧은 목에 삼도의 흔적이 있고 통견의 의습선은 뚜렷하나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습니다. 오른손은 노출되었으나 팔목 이하는 소실되었습니다. 두광을 새긴 선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족부(足部) 이하는 마멸되었습니다. 현고(現高) 약 80cm 견폭(肩幅) 65cm입니다. 현재는 이곳에 미륵암에서 지어 놓은 불전(佛殿)에 보존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는 양호한편 입니다.

 

제      목 문화유적-불상-초선대 마애석불
사적번호 불상
연     대 고려
위     치 김해시 삼안동(안동) 685-1
사     진  
상세내용 이 마애불은 초선대 서쪽 끝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거대한 자연 암벽에 3cm 정도 굵기의 선으로 음각되어 있습니다. 넓적한 얼굴에 가로로 찢어진 듯한 눈 두툼한 입술 표현 등은 고려시대의 거불(巨佛)에서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귀는 어깨에 닿지 않으며 목에는 형식적으로 삼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쪽 어깨에서부터 몸 전체에 세로로 물결식의 옷주름선을 새기고 있습니다. 광배는 내부에 장식 문양이 없는 주형거신광이다. 전체적으로 고려시대의 거불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문화재 제78호

 

제      목 문화유적-고분-김해 칠산동 고분군
사적번호 고분(기념물 제98호)
연     대 삼국
위     치 김해시 칠산동(명법동) 산 18-3
사     진  
상세내용 고분군은 동북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뻗은 칠산(七山)의 중심부 즉 명법 1구 마을 뒤쪽 해발 100m 전후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145546㎡의 범위에 널리 분포해 있습니다. 1987~1988년 2회에 걸쳐 경성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였습니다. 1차는 ⅠㆍⅡ지구를 2차는 ⅢㆍⅣ지구를 조사하였으며 모두 122기의 분묘가 확인되었습니다. 유구는 토광목곽묘와 수혈식석실분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토광목 관묘 옹관묘 등의 묘제도 혼재되어 있습니다. 토광목곽묘 중 이른 시기의 것은 바닥이 얕고 묘광이 넓은데 비해 연대가 내려올수록 바닥이 깊어지고 묘광 폭이 좁아지는 변화가 보입니다. 그리고 수혈식석실분은 매장주체부가 지하식이고 길이에 비해 폭이 넓고 천정돌은 없습니다. 천정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무로 된 천정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수혈식석실분 가운데서도 돌로 천정을 만들었던 묘제보다 시기적으로 약간 앞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이 유적에서 확인되는 토광목관묘는 바닥이 얕고 세장한 것이 특징이며 원삼국시대의 목관묘와는 구조적으로나 출토유물상에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칠산동 고분군은 시기적으로 4~6세기대의 가야묘제나 유물의 변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입니다.

 

제      목 문화유적-고분-김해 구산동 고분군①
사적번호 고분(사적 제75호)
연     대 삼국
위     치 김해시 북부동(구산동) 63, 64
사     진  
상세내용 이 고분군에는 2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2기 모두 원형 봉토를 하고 있습니다. 봉토의 크기는 1기는 지름 12.8cm에서 1.5m 높이 4m로 거대하고 다른 1기는 봉토가 절반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이 가운데 1기는 지상에서 개석이 노출되어 있고 주체부의 한쪽 벽이 파괴 되어 내부가 들여다보입니다.

 

제      목 문화유적-고분-화정 고분군
사적번호 고분
연     대 삼국
위     치 김해시 북부동(삼계동) 화정마을
사     진  
상세내용 이 유적은 분성산이 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합니다. 현재는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이전부지로 되어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진행 중입니다. 유구는 횡혈식석실분과 황구식석실분이 주류를 이루며 수혈식석곽도 있습니다. 비교적 규모가 큰 횡혈식 또는 횡구식석실분에는 유구 주위로 주구를 돌렸으며 출토 유물은 단각고배를 비롯한 비교적 늦은 시기의 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유구와 출토유물로 보아 시기는 6~7세기로 추정됩니다. 바로 남쪽에 위치한 구산동 고분군과 함께 이 유적은 김해지역에서 시기가 가장 떨어지는 고분군으로 이 시기의 문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유적으로 판단됩니다.


자료제공 : 김해시

포스팅날짜 : 2014. 4. 18. 14:28

+ Recent posts